靑白吏의 길 (6)

 許稠는 겉으로만 청빈하지 않고, 안으로 까지 淸廉하기 위해 항상 마음을 닦은 인물이다.

 하루는 자신의 마음을 닦기 위해 늦은 밤에 단정히 앉아 있을 때 도둑이 들어 물건들을 챙겨 달아난 후, 집안 식구들이 도둑을 뒤쫓았으나 허사였다. 식구들은 도둑을 보고도 가만히 있었느냐고 따져 묻자 "그 보다 심한 도둑이 마음 속에서 싸우고 있는데 어느 여가에 바깥도둑을 걱정하리요" 하고는 태연해 했다.

 어느 때 조정에서 각 지방(州ㆍ邑)의 娼妓를 폐지하자는 논의가 있었다. 의정부에서 각 대신들의 의견을 묻자, 모두 다 폐지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의견을 모았을 때, 마지막으로 임금이 허조에게 물었다.

 許稠는 "남녀관계는 인간의 큰 욕망으로 금할 수 없는 것이다. 고을의 창기는 관청의 물건이니 취하여도 무방하다. 만일 이것을 금법으로 다스린다면 나이 젊어 지방으로 부임한 지방행정 책임자들이 모두 불의하게 사삿집 여자를 탈취함으로써 영웅ㆍ준걸의 인물이 많이 죄에 빠지게 될 것이므로 폐지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습니다." 하고 답했다.

 마침내 조정도 許稠의 의견을 따라 官妓제도를 폐지하지 않았고, 모두들 許稠의 사회상을 뚫어 보는 혜안과 용기있는 소신에 놀랐다.

 許稠는 河陽허씨로 고려 공민왕 2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禮曹계통으로 승차하여, 세종이 등극하자 예조판서가 되어 의식ㆍ예법의 법전화에 힘썼던 사람으로, 자는 仲通이며, 호는 敬菴이다.

 항상 부모의 제삿날이 오면 반드시 어머니가 손수 지어 어릴 때 입혀 주셨던 푸른 빛 작은 團領을 입고 눈물을 흘리며 제사를 받들었으며, 평소에도 항상 첫닭이 울면 일어나 세수를 하고 머리를 빗은 다음, 관대를 차리고 바로 앉아서 마음을 다스렸으며 하루종일 느슨한 빛이 없었다.

 그 후 아들 후가 문과에 올라 승지가 되었다. 사람들이 모두 와서 축하했으나 아버지 許稠는 홀로 근심을 하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사람들이 연유를 묻자 그는 "天道로 보면 무엇이던지 차면 이즈러지는(損)것인데, 내가 공덕도 없이 벼슬이 신하로서는 극을 다한 정승의 자리에 이르렀고, 자식이 또 승지가 되었으니 허씨의 화가 미칠 날이 머지 않았다"고 하면서 몹시 괴로워했다. 그는 世宗 21년 71세로 세상을 떠났다.

 뒷날 世祖의 계유정란 때 허후는 김종서, 황보인의 효수를 반대하다가 거제도에 귀양 가서 교살당해 죽었다. 이 얘기는 許稠의 선견지명을 말해 주는 면도 있으나, 겸손하고 두려워할 줄 아는 인품을 말해 주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