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탕·삼탕…함량미달 청년실업대책

인턴제`보조금 낭비`역효과로 2년전 폐지

해외인턴ㆍ연수制도 세계 불황에 효과 의문  [매일경제]

지방 한 중소도시 관청에서 계약직 인턴으로 일하고 있는 정희경 씨(가명ㆍ24)는 요즘 하루하루가 답답하다. 정부가 청년실업을 해소하기 위해 내년 공공부문 인턴을 2만명 넘게 채용한다고 발표하면서 정씨 같은 기존 인턴은 자리를 비워줘야 할 처지가 됐기 때문이다.

정씨는 "몇 달짜리 임시 직장이었지만 막상 관둬야 한다고 생각하니 막막하다"며 "경기가 어려워 취업준비할 시간을 벌기 위해 인턴을 했는데 오히려 더 나쁜 시기에 사회로 내몰리게 됐다"고 한탄했다.

정씨는 "공공기관 인턴은 일정 기간 근무한 뒤 정규직으로 전환해주는 게 아니라 돈을 벌면서 다른 곳 취업을 준비하라는 취지라며 '이제 나갈 때가 됐다'고 눈치를 주는 인사담당 공무원이 너무 얄밉다"고 말했다.

청년백수가 100만명을 넘어서고 청년구직자가 317만명에 달하는 가운데 정부가 다양한 청년실업 해소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의 청년실업 해소 대책은 △중소기업 등 청년인턴제 확대 △글로벌 청년리더 10만명 양성 등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청년인턴제는 만 29세 이하 청년 미취업자를 계약직 인턴으로 채용한 중소기업에 임금의 50%를 지원하고 정규직으로 채용할 경우 6개월간 50만~80만원을 추가로 지원하는 제도다. 내년 대상이 당초 5000명에서 2만5000명으로 5배나 늘었다. 이와 별도로 공공부문에서도 내년 2만3000명을 청년인턴으로 채용한다.

사실 이번에 정부가 발표한 중소기업 등 청년인턴제 확대 방침은 이미 2002~2005년에 시행됐던 내용의 재탕이다. 당시 기업에서 지원금이 나오는 동안만 임시방편으로 인턴으로 일하게 하고 기간 종료 뒤 정규직으로 채용하지 않는 사례가 많아지자 2006년 폐지했다.

더 큰 문제는 채용된 인턴이 짧게는 2개월, 길어야 1년짜리 비정규직이라는 점이다. 당장 내년부터 5만명에 가까운 청년 임시직 노동자가 양산된다는 얘기다. 내년 이후 경제가 더 악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마당에 이들이 정규직으로 전환될 가능성은 사실상 '제로'에 가깝다는 게 전문가 전망이다. 특히 공공기관 인턴은 길어야 1년짜리 단순 사무보조 일자리를 주는 데 불과하다.

김복순 노동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이미 5년 전 실시됐던 청년인턴제는 당시 구직자나 기업 모두 도덕적 해이 현상이 심각한 문제로 지적됐다"며 "정부 지원이 곧 취업으로 연결되지 않았던 문제 있는 대책을 아무런 보완 없이 다시 실시한 데 대한 염려 목소리가 있는 게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노동부는 청년인턴제의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해 감원방지기간 설정 등 보완 대책을 강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년인턴에 대해 노동계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일자리 창출 실효성이 떨어지는 데다 비정규직만 양산한다는 이유에서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단순한 사무보조 업무를 하는 인턴을 뽑아봤자 청년구직자 경력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공기업의 경우 정규직은 해고하면서 비정규직만 늘려 결국 고용의 질이 크게 떨어질 것"이라고 염려했다.

글로벌 청년리더 양성사업 가운데 외국인턴도 지난해에 폐지됐던 외국인턴 파견사업과 비슷하다. 이 사업은 당시 취업률이 20% 수준에 불과해 성과 부진을 이유로 폐지됐다. 2~6개월짜리 짧은 인턴연수만으로는 능력 있는 인재로 키우기 어렵기 때문에 사업 효과가 저조할 것으로 예상된다.

청년층 관심이 가장 높은 미국 연수 프로그램인 WEST(Work, English Study, Travel)도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 17일부터 내년 파견인원 모집에 들어가긴 했지만 외국 연수기관 선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전 세계가 동반 경기 침체를 겪고 있기 때문에 현지 일자리 사정도 매우 악화되고 있다"며 "양질의 인턴 또는 연수 자리를 찾는 게 어려워 내년 파견인원 목표 달성이 쉽지만은 않다"고 말했다.

정부가 내놓은 워킹홀리데이 5만명 확대도 청년실업대책이라고 하기엔 너무 초라하다.

익명을 요구한 경제연구소 연구원은 "정부가 내놓은 청년실업정책은 '실업자가 되느니 비정규직이라도 하라'고 강요하는 것으로 단기 효과는 있겠지만 지속적으로 신규 고용을 창출해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며 "근본적인 실업대책이라고 보기는 힘들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는 실업급여 확충, 직업훈련ㆍ교육 등 고용 안정망을 확충하는 데 더 많은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