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리소리골 악기박물관 개관공연 모습.

▲ 이달균 시인

강원도 홍천군 서석면 용오름 마을에 건립된 ‘마리소리골 악기박물관’ 개관 1주년 공연을 다녀왔다. 전국에서 모인 예술인들과 오피니언 리더, 그리고 음악과 사람에 관심 많은 약 400여 명의 인원들이 골짜기를 넘쳐나게 했다. 악기박물관을 장식한 경남 시인들의 50여 편의 걸개시들은 바람에 휘날리며 악기박물관을 화려하게 수놓았고, 먼저 온 관람객들은 시 한 편 한 편을 읽으며 공연을 기다리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버스가 다니는 도로를 벗어나 좁은 콘크리트 포장도로를 지나 다시 비포장의 소로를 올라야 마리소리골이다. 경제가 얼어붙고 이제 막 겨울이 시작되는 스산한 시기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올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그만큼 음악을 통해 또 그리운 사람들을 통해 자신을 위로받고 새로운 삶의 의지를 다지고자 하는 이들이 많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개관공연이 시작되기 전 면장님을 비롯한 지역의 몇 분을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아쉽게도 홍천군 관계자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외지인인 나로서는 구체적인 이유는 모른다. 다만 중요한 것은 이 산골 벽촌에 전국 방방곡곡의 인물들이 비싼 기름을 소비해 가며 여기까지 와서 별 시설도 없는 토굴에서 하루 밤을 보내며 인생에 대해 홍천의 자연에 대해 예술에 대해 꼴딱 밤을 지새우고 간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주민들이 들고 온 벌꿀, 표고버섯 등 홍천 특산품을 사 가기도 한다. 비록 물량은 얼마 안 되지만 반짝 열리는 장터의 모습은 이채롭다. 과연 홍천의 어느 곳, 어느 단체에서 자발적으로 이처럼 많은 이들을 불러 모으고 지역을 홍보할 수 있을까. 요즘 행사는 넘쳐나지만 정작 그 행사를 빛내 줄 관객 모으는 일은 쉽지 않다. 그래서 관에서는 예나 제나 ‘동원’이란 걸 조자룡이 헌 창 쓰듯 한다. 그러나 이곳엔 동원은 없다. 그저 자연이 좋아서 사람이 그리워서 오는 이들일 뿐이다.

일각에서는 “접근성이 용이하지 못한 곳에 악기박물관을 세우다니....”하는 염려도 있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누가 어떻게 운영하는가에 대한 방법의 문제일 뿐이다. 작년 한 해 동안 수차례 유수의 단체를 초청하여 공연하였고, 풍물반을 개설하여 주민들에게 문화혜택을 누리게 했다. 독일에서 귀한 분으로부터 악기를 기증받기도 하고, 연주자가 손때 묻은 악기를 보내오고, 악기를 만드는 장인이 기증하기도 하는 등 관심을 가져보면 감동적인 사연도 함께 숨어 있는 곳이다.

뭐니 뭐니 해도 최소 악기박물관을 찾아오는 외부인이 1년에 천명은 넘는다. 기왕 큰돈을 들여 산골에 박물관을 지었다면 잘 되도록 지혜와 노력을 모아야 한다. 이번의 경우는 참 좋은 기회였다. 어렵게 이곳을 찾은 외부의 분들과 함께 술 한 잔 기울이며 얘기도 듣고, 함께 즐기면서 문화를 공유해 간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물론 홍천은 홍천대로 지역이 갖는 특성이 있고 이해할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더욱 그래야 하지 않을까. 군비와 도비를 지원하여 접근성이 용이치 않은 곳에 박물관을 세운다면 그에 따른 문제점과 앞으로의 활용방안에 대해서도 면밀한 검토와 시뮬레이션이 있어야 했다. 모르긴 해도 충분한 논의 끝에 이뤄졌으리라 여겨진다. 국민의 혈세가 들어가는 일에 이 정도의 타당성 연구는 하지 않을 리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지 못했다면 더더욱 많은 관심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 7억 원의 거금이 든 박물관을 이제 와서 부수거나 통째로 떼어갈 수도 없다. 그렇다면 활성화를 위한 다각도의 방안과 예산지원이 있어야 한다.

이병욱 서원대 교수는 악기박물관 건립의 산파를 맡았다. 자신의 토지를 희사하였고, 공연기획과 공연팀들을 초청한다. 하지만 그는 관장도 학예사의 직책도 갖고 있지 않다. 그저 음악이 좋아 무보수로 이런 수고를 해 온 것이다. 이번 공연엔 ‘이병욱과 어울림’ 그리고 ‘마리소리골 악기박물관’을 사랑하는 카페회원(어울사랑)들이 십시일반 하여 기념품도 만들고 하여 무사히 1주년 기념공연을 마쳤다고 한다.

그러나 계속 이렇게 되긴 쉽지 않다. 홍천군 역시 이들에게 힘을 지워서는 안 된다. 물론 지금까지 최선의 노력을 했겠지만, 문화 혹은 지역홍보 관련 공무원들과 군민의 대표인 군의원들이 함께 와서 멀리서 홍천을 찾아준 분들에 대해 술 잔 한 잔 기울여 보지 못한 것은 못내 아쉬운 부분이다. 진정한 행정은 의자 위에서 이뤄지지 않는다. 참여자와 관계자가 함께 밤을 새우며 서로를 이해하고 이해를 구할 때 답은 얻어진다. 그 결과를 집행하는 것이 바로 행정이다.

마산으로 내려오면서 하회마을에 들러 ‘안동하회별신굿’을 보고 왔다. 그날이 마침 올해 마지막 공연이라 의미도 컸다. 하회마을과 하회별신굿이 드디어 유네스코로부터 인류문화유산으로 지정을 받는다고 한다. 곧 공연장도 새로 지을 것이라 한다. 이처럼 문화는 다음 세기를 기약하고 피부색과 종족이 다른 지구촌 인류에게 민족적 다양성을 고취시키는 최고의 무기다. 우리가 문화와 예술을 어떻게 봐야하고 접근해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예다.

‘마리소리골 악기박물관’은 이제 시작이다. 불과 1주년일 뿐이다. 인생은 짧아도 예술은 길다고 하지 않는가. 사랑하는 방식에는 뜨거운 것도 있고 다소 무심해 보이는 것도 있다. 나는 그런 사랑으로 이해하고 싶다. 그 무심해 보이는 사랑도 사랑은 사랑이니까. 조금 늦게 다가간다고 진정성이 약한 것은 아닐 테니까. 길게 보고 혜안을 발휘하는 홍천군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악기박물관 1주년을 다녀오면서 다시 식어가던 홍천에 대한 사랑이 샘솟는다. 그냥 홍천의 자연이 아름다워서만은 아니다. 홍천의 자랑인 소설가 전상국 선생이 작사하고 이병욱 선생이 작곡한 ‘홍천강 흐르네’란 노래를 들었고, 그곳의 선무를 하는 분의 공연을 지켜보았다. 또한 동창마을 카페지기 한 분의 정성과 친절한 마음씨가 외부인들에게 인정을 느끼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악기박물관 개관 2주년이 벌써 기다려진다.

◇ 이달균 시인은.
한국작가회의회원이며 계간 <시와 생명> 편집인과 <경남문학>편집장을 역임하였다. <장롱의 말>외 여러 권의 시집이 있으며 중앙일보 <중앙시조대상 신인상>, <마산시 문화상>,<경남시조문학상> 등을 수상하였으며, <경남신문>에 <이달균 칼럼>을 집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