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공무원 퇴직자들에게 줄 연금액과 퇴직수당이 6조원이지만, 부족한 돈이 무려 1조2000억원이나 된다. 정부는 이 돈을 국민들 세금에서 대준다. 연금 재정이 이 지경이 됐다면 보험료를 올리거나 받는 돈을 줄이는 비상조치를 취해야 하지만, 정부나 공무원 누구도 눈 하나 깜빡 않는다. 연금 적자가 생기면 국민의 세금으로 대주도록 정부가 2000년 공무원연금법에 규정해 놓았기 때문이다.

이같이 공무원연금에 매년 수조원을 배짱 좋게 혈세로 지원케 한 것은 행정안전부와 옛 기획예산처다. 국민들이 피땀 흘려 번 돈을 우습게 아는 게 바로 이들이다. 보험료를 겨우 1%포인트 올려놓곤 공무원들의 반발을 달랜다는 이유로 이런 약탈적 법 조항을 만든 것이다.

이런 공무원연금을 고치겠다고 나선 노력조차 2년째 헛돌고 있다. 행정안전부가 지난 2006년 학계와 공무원·시민단체 등으로 '제도발전위원회'를 만들고 작년 초 개혁 대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기득권 지키기'에 나선 공무원들의 반대에 부딪혀 대안은 허공에 뜬 상태다.

대안이라는 것도 뜯어보면 기가 차다. 보험료를 현재 총소득의 5.5%(보수월액 8.5%)에서 2018년까지 8.5%로 더 내게 하고, 받는 돈도 약간 낮추기로 했지만, 그 손실을 보상하기 위해 퇴직수당을 민간기업 수준으로 대폭 올려 주도록 했다. 이처럼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식으로 현직 공무원들에겐 기득권을 그대로 유지하게 만들었다. 그리곤 앞으로 새로 임용될 공무원들에게만 국민연금과 같은 낮은 수준의 보상을 받도록 했다. 재정 적자 해소 효과는 앞으로 20~30년 뒤에 나타난다는데 이걸 개혁이라고 내놓으면 어느 국민이 인정하겠는가.

공무원연금이 이처럼 적자에 빠지게 된 것은 '적게 내고 많이 받는' 후한 연금제도 때문이다. 보험료를 70년부터 95년까지 25년간 보수의 5.5%에서 한번도 올리지 않았다. 그런데도 받을 돈은 소득의 50%에서 시작해 70%, 76%까지 계속 높여 많은 연금액을 타게 만들었다. 22만 명의 연금 수령자 가운데는 월 600만원이나 받는 이가 있고, 월 300만원 이상 받는 사람도 이미 9200명을 넘었다. 월 100만원도 못 벌어 애태우는 국민들로선 한숨만 나올 뿐이다.

노무현정권은 연금개혁 한다더니 작년 말 공무원 정년부터 연장키로 해 국민들을 복장 터지게 만들었다. 이명박 정권도 제도 틀을 다시 짤 연금제도발전위원회를 새로 구성하면서 28명 중 10명을 공무원 노조 등에서 채웠다. 노조와 연금 협상을 하겠다는 것이니 과연 공무원 연금을 개혁할 의지나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공무원연금은 중병환자다. 재정 적자를 메우기 위해 내년 2조원, 후년 2조3000억원, 2011년 2조8000억원 등 앞으로 5년간만 따져도 16조원이나 국민 세금에서 쏟아 부어야 한다. 이 돈이면 65세 이상 노인 300만 명에게 매월 8만4000원씩을 '기초연금'으로 줄 수 있는데, 국민들은 이 돈을 공무원들의 노후를 위해 내주어야 한다. 공무원이 국민을 위해 있는지 국민이 공무원을 위해 있는지 모르겠다.

월급 외엔 모든 생활필수품 가격이 올라 가뜩이나 더운 날씨에 짜증만 나는 서민들에겐 공무원연금은 그야말로 신선놀음이다. 공무원들도 이런 문제를 안다면 현직 공무원과 신규 공무원, 국민 등이 재정 부담을 골고루 짊어지는 연금개혁에 나서야 한다. 오스트리아와 일본처럼 연금액도 국민연금 수준으로 줄이고, 지출을 줄이기 위해 공무원 수도 감축하도록 공무원들이 먼저 뜻을 모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국민과 공무원이 서로 편 나눠 다투는 시대가 곧 올지도 모른다.